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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하나님!

  • 글쓴이 pauline 날짜 2016.09.13 02:56 조회 3,151

아픔만큼 성숙 한다고 합니다. 


왜 그런 말이 나올까 생각해 봅니다.  아프면 고통 속에서 왜 아플까부터 먼저 생각을 합니다. 원인부터 찾는게 본능적인 인간의 행동같습니다. 무엇을 잘 못 먹었을까?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먹은 음식이 상했는지 분석해보지만 딱히 의심이 가지 않으면 다른데로 방향을 돌립니다. 


요즘 장염이 유행하는데 바이러스에 걸린 건 아닌지, 환경이나 타인에 의해 전염된 것인지 또는 누구와 접촉을 했는지 어디에 갔었는지 등 고통속에서 머리 속이 혼란스럽고 복잡합니다. 시간이 흘러도 아픔은 나아지지 않고 더욱 고통이 깊어졌습니다. 


내 입술에서  순간적으로 아버지, 주님!!! 을 부릅니다. 그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나음을 받을 것만 같다는 생각보다도 나를 보살피고 계신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존재에 대한 인식같았습니다. 


"아버지 저 많이 아픕니다. 아버지 저 죽을 것 같아요." 입술에서는 애절한 고통의 신음소리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나의 고통의 공간밖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약을 먹고 아픔을 치료하려 했으나 몸이 약을 거부하여 약을 의존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만 불렀습니다. "아버지 살려주세요!" 


갑자기 하나님의 위로가 느껴졌습니다. 잠시동안이라도 안식을 해라. 너에게 이런 아픔이 아니면 너가 쉴 수 있겠니. 너무 몸을 혹사시키고 있단다. 저는 아픔속에서도 과제가 떠오르고, 이거도 해야하고 저것도 해야하고 할 일이 많은데 하며 근심 걱정을 놓지 못했습니다. 하루동안 아픔을 느끼면서 육체적 고통에 있는 환우들의 아픔이 느껴졌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났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육체적 고통이 따릅니다. 육체적 고통에는 신체적 고통을 뺄 수 없습니다. 아픔속에서 착한 행실을 보이는 것입니다. 새벽부터 간호하는 남편이 신경이 쓰였고 나의 아픔에서 선한 행실을 보이고 싶었습니다.  아프면 가까이 있는 남편에게 짜증을 부리며 아픔을 나누려고 했었는데  이 번에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남편이 옆에 있을 때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지나고보니 약으로가 아닌 하나님을 믿음으로 나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증거로 남긴 것입니다. 남편이 약을 사다줘서 잘 안 먹어 섭섭했겠지만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음을 받았다고 하나님은 살아계시다고 알린 것입니다. 이 번 일로 나에게 아픔은 컸지만 교회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과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더욱더 깊게 깨달은 시간들이었습니다.